그러니까 어젯밤. 지식의 전당 상남도서관에서 나와 찌는 듯한 더위에 추적자 백홍식 씨처럼 추적추적 집으로 지친 발걸음을 옮기는 중. 

귓가에선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달팽이관을 쪼니 흥얼흥얼 말춤이 생각 나더라. 스스로 말인 양 거침없이 전진하다, 늘 지나치는 배트맨 동네 고담시 같은 어두운 뒷골목에서 묘한 여인의 소리가 들려오니, 세 살배기 아이처럼 흠칫 놀라게 되더라. 뱁새눈으로 흘깃 흘려보니 동네 양아치 세 명이 한 여인을 희롱하고 있는데. 이는 필히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나 선뜻 용기가 나지 않더라. 모른 척 그냥 지나칠까 하다, 복숭아뼈로부터 육군 예비역 병장 개구리 마크의 자부심이 솟고, 용감한 시민상 상단의 금빛 용안이 날 노려보는 듯하니. 

아, 이는 그냥 지나쳤다간 곤히 잠들어 계신 전주이씨 왕조 무덤 위 파란 잔디가 쭈뼛쭈뼛 설 정도로 세상이 노할 일이더라. 미진한 발걸음을 옮겨 복식호흡으로 심호흡하고, 배꼽 아래에서부터 뿜어나오는 우렁찬 목소리로 '이제 그만하고 집 가자'라고 외치니. 하이에나 새끼처럼 씹을 거릴 찾고 있던 양아치 세 명이 동시에 날 노려보더라. 

대가리 안 떼고 똥 안 걸러낸 멸치 같은 놈 하나, 어벤저스에서 분명히 본 헐크 같은 놈 하나, 얼핏 봐도 보스삘이 나는 넘버 3 재떨이 같은 놈 하나. 합이 셋이오, 눈알이 여섯이니. 독기 품은 그 눈빛들에 오금이 지리더라. 

일단 쪽수에서 밀리니, 쥐어터지는 거야 당연지사. 그러나 쫄린 척하면 이는 패배의 지름길이니 최대한 위엄있게 받아치되, 이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슬기로운 생활 '수'에 빛나는 내 머릴 믿으며 좌뇌 우뇌를 믹싱하고 있던 찰라. TV 동물농장 '파충류 사랑 편'에 나올만한 시커먼 뱀 같은 주먹이 눈앞으로 밀려오니. 빛보다 빠른 내 보호 본능에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되더라. 
'오냐, 선빵이냐'. 엉거주춤한 자세로 객기부려 맞받았지만 맞을 리가 있을쏘냐. 

그 사이 멸치 같은 놈이 다가와 복부를 휘갈기니. 아, 소리 없이 움직이는 네 놈. 이놈은 태평양 가서도 살아날 놈임에 절로 감탄하게 되더라. 3초쯤 늦은 통증이 오장육부를 뒤집어 놓고, 오른쪽 아래 복부로 밀려오니. 이는 급성맹장 삘.

'아. 내 배' 하고 소리치며 뒹굴다 문득 조석 님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니. 
'아. 나는 맹장이 없잖아.'

중2 때 식중독 걸렸는데. 억울하고 뜬금없이 떼진 내 맹장을 추모하니, 나도 모르게 켈로그 좋은 것만 드리는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더라. 뒹굴다, 벌떡 일어나 한 손으론 배 잡고 한 손으로 주먹 쥐니. 이보다 멋질 수 있으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얻어맞을 생각에 어제 먹다 남은 치즈케이크가 떠오르는 이 밤은 이리도 긴데, 저 뇬은 도망 갈 생각도 안 해.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을 게 뻔하지만, 사나이 눈물 약하다 욕할쏘냐. 마음 단단히 먹고 대기하고 있는 순간. 원피스 해군 3대장 BGM이 절로 깔리며 엄청난 빛을 내뿜는 3인이 등장하니. 

아, 그대들은 부처요, 예수요, 마호메트, 공자님이라. 쪽수 변화가 생기니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그 뒤부턴 청산유수. 양아치 세 명이 자진해서 뒷걸음치니 '잘 가세요 잘 있어요' 이는 하늘의 뜻이요, 천운이로다. 

사태가 진정되고 아직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아가씨를 찾아뵈니. 그제야 진정하고 여린 미소를 띠더라.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거니 연신 고맙다는 말뿐. 이쯤 되면 상황도 마무리, 멋지게 그림자만 남기고 떠나는 것이 사나이의 도리일 터.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리를 뜨려 하니. 갑자기 핸드폰을 달라 하는 것이. 아. 이는 영화의 한 장면. SK텔레콤 LTE를 믿으며 건네니 역시 자신의 번호를 찍는것이 아닌가. 아. 이 예쁜 여인이여. 

그러고 나서 본인 폰에 전화를 거는데. 수줍은 나는 고개만 떨굴 뿐 아무 말이 없었더라. 순간.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브라운 시티'가 익숙한 벨소리로 들려. '이것이 인연이다' 하는 생각에 벅찬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아침을 알리는 내 폰의 힘찬 벨소리.
아 꿈.

-이서 쓰고 이서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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