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건부는 덤덤했다. 지난 세월 잊고 떠올렸음을 반복해서일까, 마치 그저 스쳐 지나가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대수롭지 않기 말했다.
6살 이후 건부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이제는 뚜렷이 기억하기도 어려운 유년 시절과 죽은 개처럼 끌려가던 마지막 모습이 전부다. 힘들면 찾아가고, 괜히 한 번 들려 말이라도 걸어볼 수 있는 무덤도 없다. 어디에 잠들었는지, 왜 죽었는지 평생을 알고자 했지만 돌아온 건 각각의 침묵뿐이었다.
어느 순간 건부는 아버지를 가슴에 묻기로 했다. 자신만이 아는 비밀로 간직하면 됐다. 어쩌면 그것이 건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아버지가 그리우나 아버지를 잊어야만 살 수 있었다. 내 자식에게 역사를 대물림해서는 안 됐다.
그날 밤 찬욱의 불면증은 더 깊어졌다.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했지만 그걸 무엇으로 메워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찬욱은 아버지처럼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고, 그저 모른 척하고 말이다. 할아버지가 경찰이고 말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경찰이든 아니든 할아버지는 그냥 할아버지였다. 아버지를 낳았고 또 찬욱을 있게 했다. 그거면 됐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는 의지와 찬욱을 깨우는 잡생각이 교차하며 어둠이 더 짙게 내려앉았을 무렵, 찬욱은 다짐했다. 언젠가, 할아버지를 찾게 된다면, 아버지 손을 꼭 잡고 할아버지가 묻힌 언덕에 마음껏 안기겠다고. 아버지의 눈물을 모른 척하겠다고. 가을이 지나가고 또다시 계절이 돌아오면 무덤 위 그 파란 잔디를 자랑처럼 만지러 가겠다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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