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李福童. 이복동.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트럭 위에서 복동은 생각했다. 두 눈이 보이지 않았기에, 복동의 생각은 더 깊어졌다. 복동은 떠올렸다. 내가 과연 이름처럼 살았을까 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홀어머니마저 여읜 복동은 어렵지만 외롭게 살진 않았다. 어릴 적부터 한동네에서 자란 친구들이 있었고, 때마다 복동을 불러주는 일터도 있었다.

물론 좋게 포장해서 그렇지, 복동은 한량에 가까웠다. 덩치가 좋고 젊다는 이유로 이래저래 동네 허드렛일을 도맡았으나 직장이라 볼 순 없었다. 일이 없을 땐 동네 친구들과 놀기 바빴고 저녁은 술에 취해 보냈다.

일도 없고 술도 없는 밤이면 복동은 동네 주점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했다. 복동의 연주에 친구 영태는 피아노를 덧붙였고 선엽은 간드러진 신민요나 흥겨운 만요 한 곡씩을 불렀다.

그 사이 희갑은 바람잡이가 돼 손님 박수를 유도하며 연주비를 받으러 다녔다. 구부정한 자세로 탁자 사이를 오가는 희갑 모습에 복동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가며 겨우 연주를 마친 적도 많다.

복동은 '노들강변'을 특히 좋아했다. 가끔은 하모니카 독주로 노래를 연주하곤 했다. 강변을 오가는 사람들의 애환이 가사에 담긴 점이 좋았다. 듣고 있으면, 부르고 있으면 섬진강 옆에서 살아가는 자신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복동은 노들강변을 연주하다 혜자를 만났다. 가울바람이 막 불기 시작할 때였다. 복동의 연주가 끝나자 혜자는 한참이나 손뼉을 쳐줬고 복동은 그 눈을 맞추며 웃었다.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에게 끌렸다. 함께 술을 마셨고 강변을 걸었고 사랑을 나눴다.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은 그들의 신혼집이 됐다. 식은 올리지 못했지만 새 생명을 낳았고 언젠가는 그럴싸한 주점을 열어보자는 꿈을 나눴다.

애석하게도 처음 그 다짐이 끝까지 지켜지진 않았다. 복동은 여전히 가난했고, 철이 없었다. 이렇다 할 직장 없이 술을 즐겼고 주점에서 연주를 마치고 나면 다른 여자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때문에 혜자에게 상처도 많이 줬다. 때론 울면서, 때론 거친 말을 쏟아내며 복동을 몰아세우는 혜자에게 복동은 지키지 못할 약속만 반복하곤 했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이 트럭 위에서, 복동은 오해가 풀리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혜자를 꼭 안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는 한량처럼 살지 않겠다고, 피맺힌 약속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혜자를 더 사랑하고 아이들과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비릿하면서도 시원한 냄새가 복동 코를 찔렀다. 복동이 이 냄새를 모를 리 없었다. 섬진강이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까지 보면 복동이 탄 차는 섬진강 다리를 건너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이들은 어디로 복동을 데리고 가는 것일까.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은 복동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답을 해줬다. 복동의 코를 간질이던 냄새도 사라지고, 다른 모든 소리도 사라진 알 수 없는 곳. 그곳에 차를 세운 그들을 복동을 포함한 다섯 명에게 강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반란군에 협조한 새끼들. 불순분자 새끼들. 한 달 전에 여수에서 빨갱이들이 날뛴 거 니들도 잘 알고 있지. 니들은 본보기가 될 거고 또 시발점이 될 거다. 아직도 날뛰는 놈들, 숨어 있는 놈들 싹 다 찾아내고 있으니까."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복동을 제외한 네 명이 아우성쳤다. '저는 반란군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놈입니다', '살려주세요'가 뒤엉킨 목소리는 이내 '' 하는 소리로 모두 통일됐다.

반항은 의미 없어 보였다. 복동을 포함한 이들이 반란군에 협조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남자들에게 필요한 건 본보기였고, 실적이었다. 한량처럼 살던 놈, 동네에서 힘 좀 쓰는 놈 몇몇 잡아서 보고하면 그만이었다. 복동 같은 놈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왜 하필. 복동은 얼마 전 친구들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처음 말을 꺼낸 건 희갑이었다. 희갑은 여수와 순천에서 군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폭동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고도 했다. 희갑은 명령을 거부한 군인들의 폭동이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만약 확장된다면 모두가 공평하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희갑에 말에 선엽과 영태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비웃었다. 폭동군이 섬진강 다리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친구들 말에 복동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가 어쨌든, 기본질서가 흐트러지면 안 된다는 데 동의를 표했다. 그러다가 복동은 툭 한 마디 내던졌다.

"그래도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이 오면 좋긴 하겠네."

복동의 말을 끝으로 폭동 이야기는 흐지부지 정리됐다. 아는 것도 없고, 그리 큰 관심도 없었기에 사실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날 밤 혜자 옆에 나란히 누운 복동은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슬쩍 꺼냈다.

"옆 동네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네. 당신이나 나나, 희갑이나 영태나, 우리 동네 사람들이나. 공평하게 나누면서 다 같이 잘 사는 날이 오면 좋긴 하겠네."

복동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혜자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복동을 등지고 눕는 혜자 모습에 복동은 '하긴 그런 날이 오긴 하겠나'며 한숨 쉬듯 말하고는 그냥 그렇게 잠을 청했다.

 

'이서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동이] (8)  (0) 2020.01.30
[복동이] (7)  (0) 2020.01.28
[복동이] (5)  (0) 2020.01.17
[복동이] (4)  (0) 2020.01.16
[복동이] (3)  (0) 2020.01.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