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맛있는 이야기.
우리네 밥상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산과 바다, 들판의 보물들.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되는 '원재료'를 찾아서-
다시 읽는 맛 - (17) 남해 시금치
DJ : 우리 청취자분들은 여름 하면 어떤 색깔을 먼저 떠올리시나요? 이글거리는 태양을 나타내는 빨간색? 시원한 바다를 떠올려주는 파란색? 각자 생각나는 색이 있을 텐 테요. 어떤 분들은 '녹색'과 여름이 참 잘 어울린다고도 하네요. 그러고 보면 여름철 녹색은 울창한 숲을 그려주기도, 녹조와 같은 걱정거리로 다가오기도 하는데요. 뭐든지 먹을거리가 연관시키는 이분은 '여름과 녹색'에서 이 음식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매주 맛있는 세계로 우리를 초대해주는 이서 님 모셨어요. 안녕하세요.
이 : 네 안녕하세요.
DJ : 오늘도 '이 음식'을 떡 하니 들고 왔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역시 보자마자 '녹색'이 딱 떠오르더군요. 우리 작가님이 직접 먹어보기 전에 살짝 힌트를 더 주신다면요.
이 : 네 사실! 경남에서 이 식재료 재배시기는 겨울이에요. 특히 이 지역에서는! 이 식재료를 딱 겨울에만 수확하죠. 하지만 이 사시사철 정말 우리 식탁 위에서 정말 익숙하게 만나는 게 또 이 음식이거든요? 여름철 식탁 위에 푸름 내음 한 번 진하게 풍겨보고 겨울이 오면 더 맛있게 드시기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해봤습니다. 일단 우리 작가님께 한 번 시식 기회를~
지 : 안녕하세요 지 작가입니다.
DJ : 저 아삭아삭한 식감부터 짭조름한 맛까지. 뭔가요 이 음식?
새콤달콤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시금치.
이 : 네 오늘 맛있는 이야기 주인공은 바로 뽀빠이 간식으로도 유명한 시금치입니다! 근데 오늘 소개할 이 시금치 주산지가 바로 남해거든요. 10월부터 3월 중순까지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자라는 남해 시금치에 대해 꼼꼼하게 살펴보도록 할게요.
DJ : 네네, 앞서 피조개, 홍합, 재첩. 바다로 떠났다면 오늘은 산으로 들로 떠나볼게요. 먼저 역사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죠? 남해와 시금치 연결고리를 말해주신다면요?
이 : 아는 만큼 먹는다는 자세로, 하나하나 보면요. 남해 시금치는 2000년대 이후 서면·설천면을 중심으로 퍼졌다고 해요. 서울 쪽에 상품화해 본격적으로 내놓은 것은 불과 10년 전쯤이죠. 앞서 말했듯 남해 시금치는 겨울에만 재배하는데요, 그 이유가 여름 시금치는 금방 시들어 수송 거리가 짧아야 하거든요? 남해에서도 여름 시금치를 시도하긴 했으나 끝내 물리적 수송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했죠. 보통 시금치는 그 품종만 200가지도 넘는다고 하는데요, 남해는 이 중에서도 재래종과 유사한 품종을 심어 가꾼다고 해요. 사계절종이라 불리는 이 품종은 단맛이 강한 게 특징이라고 하네요.
DJ : 남해 시금치가 달다 달다 하는 게 이유가 있었군요. 그러면 남해에서 시금치 재배가 잘 될 수 있었던 이유, 어디에 있을까요.
이 : 네, 남해는 사실 농사짓기에는 척박한 땅이죠. 넉넉하지 못한 땅에 먹고살고자 쉬지 않고 일을 했는데요, 마늘도 그 중 하나였죠. 하지만 일손 구하기는 점차 어려워지고 인건비 부담에 마늘 농사에 어려움을 겪은 농민들이 시금치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거죠. 이 같은 농민 의지에 자연환경도 뒷받침됐는데요, 적당한 일교차와 바닷바람, 깨끗한 공기가 농민 시름을 덜게 해 주었죠.
남해 시금치에는 농민들의 땀과 부지런함이 녹아 있다.
DJ : 남해분들의 부지런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네요. 본격적으로 음식 이야기하기 전에 궁금증 하나 풀고 갈까요? 만화 뽀빠이를 보면 시금치가 힘의 원천으로 등장하잖아요. 여러 채소 가운데 왜 하필 시금치인가요?
이 : 저희도 취재하면서 참 궁금했던 부분이거든요. 알고 보니 이게 엉뚱한 실수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1870년대 독일 화학자가 시금치 성분을 분석하면서 실수로 철분 함유량을 10배나 넘게 계산한 게 발단이었는데요, 미국에서도 이 연구 결과를 잘못 믿어, 철분 섭취를 장려하고자 뽀빠이에게 시금치를 먹였다고 하네요.
DJ : 어렸을 적 그 만화 보면서 시금치 막 먹었던 분들 많으실 텐데요, 조금 과장됐긴 했지만 몸에 좋다는 건 확실하죠?
이 : 그럼요. 시금치엔 비타민 A가 풍부에 눈을 건강하게 하고요, 시금치 엽산은 임산부와 성장기 어린이들에겐 꼭 필요한 성분이라고 하네요. 또 칼슘 함유량이 많아 빈혈예방에도 좋고요.
DJ : 먹는 게 남는 거라는? 그런 말이 딱 떠오르네요. 이제 진짜 먹는 이야기 좀 해볼까요. 맛있는 경남을 보면 시금치를 위한 요리는 없어도, 시금치 빠진 요리는 섭섭하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시금치를 이용한 요리 뭐가 있을까요?
이 : 취재할 때 저희가 농민들에게 여쭤보니 딱 이러시더라고요. "우리는 그냥 따서 쌈 싸먹기도 하고,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그만큼 씹히는 맛과 단맛이 일품인데요. 이 외에도 시금치는 김밥, 비빔밥, 우동 등 가정이나 식당에서 보조출연자로 언제나 인기가 있죠.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잡채인데요, 잡채에 시금치 빠지면 진짜 섭섭하잖아요. 붉은 면과 푸른 시금치, 듬뿍 뿌린 깨소금의 색 조화는 물론 시금치 향이 입맛을 북돋는 데 최고죠.
DJ : 아까 우리 지 작가님이 잡채를 막 드실 때! 부러운 눈길로 계속 쳐다본 이유가 여기 있었군요. 근데 이 좋은 시금치, 먹기까진 농민들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해요?
밥 도둑 시금치무침.
이 : 그렇죠! 우리가 항상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소재인데요. 시금치 캐기는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이거든요? 시금치는 잎의 이슬이 마를 오전 11시 정도가 캐기에 적당한 시간이라고 해요. 장시간 쪼그리고 앉았을 때 오는 고통은 물론 무릎 관절로 고생하는 분도 많은데요, 이 때문에 작은 부표 모양의 끈이 달린 방석은 필수라고 해요. 수확량은 한 사람이 하루에 많게는 70kg까지 캐는데 다 캔 시금치는 300g, 800g 두 종류로 묶어 유통한다고 하네요.
DJ : 그렇군요. 하지만 이렇게 공들여 캔 시금치가 가격 하락 때문에 애를 먹기도 한다면서요?
이 : 네, 풍작이 달갑지 않은 이유이기도 한데요. 10kg 6만 원을 넘긴 시금치가, 풍작으로 쏟아져 나올 때는 그 가격이 6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해요. 시세가 좋지 않을 땐 사람 쓸 엄두도 못 내 농민 고통도 그만큼 늘어나고요. 또 남해 시금치는 시장보다는 대형마트 쪽에 주로 납품되는데 '판로 다양화'에 대한 고민도 안고 있다 해요.
DJ : 소비자 처지에서야 물론 싸면 좋겠지만 또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다는 것. 꼭 기억할게요. 마지막으로 이서 님이 생각하는 남해 시금치란?
이 : 네, 시금치 마음을 조금 담아 "제철 따지지 마세요. 난 늘 여기 있습니다."
DJ : 네 오늘 소식도 잘 들었습니다.
※본 글은 라디오 방송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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