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맛있는 이야기.

우리네 밥상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산과 바다, 들판의 보물들.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되는 '원재료'를 찾아서-



다시 읽는 맛 - (20) 함양 흑돼지


DJ : 음식을 표현하는 소리, 참 많죠? 어떨 때는 그 소리만으로 맛있는 밥상을 떠올리기도, 입맛을 자극하기도 하는데요. '보글보글'하면 뜨끈뜨끈한 찌개가, '사각사각' 하면 달고 단 과일이, '노릇노릇'하면 잘 익은 전이 떠오르는 건 저뿐만이 아니겠죠? 오늘 소개할 이 음식 역시 '이 소리'와 아주 잘 어울린다고 하는데요, 전국 구석구석, 우리 지역의 음식재료를 찾아 떠나는 분, 이서 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 볼게요. 안녕하세요.

: , 안녕하세요.

DJ : 오늘 맛있는 이야기, 음식과 관련한 소리로 문을 열었는데, 우리 이서 님은 어떤 소리 가장 좋아하시나요?

: 저는 개인적으로 면 음식 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아, 후루룩후루룩 소리만 들으면 아주 심장이 요동쳐요.

DJ : 그러면 혹시, 오늘 들고온 이 음식도 면 음식인가요? 뭔가 뜨끈뜨끈 한 것 같긴 한데요?

: 어떤 음식일지! ! 오늘도 우리 지 작가님 불러봐야겠죠? 작가님!

: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DJ : 벌써 눈치 채신 분들 많으실 텐데요, 이 음식 어떤 음식인가요?


'지글지글' 삼겹살. 언제 먹어도 최고! 


: , 이 음식하면 역시 '지글지글'이라는 소리가 딱 붙는데요, 물론! 오늘은 여건상 직접 고기를 굽지는 못하고, 이게 들어간 '전골'로 준비해봤어요. 삼겹살로도 먹고 오겹살로도 먹고, 찌개에 넣어도 먹고, 볶아서도 먹는 국민 음식! 오늘 맛있는 이야기는 돼지 편입니다.

DJ : 지난주 전어에 이어 우리 입맛 다시는 청취자들 많으실 텐데요, 근데 오늘 이 돼지가 일반 돼지와는 조금 다르다면서요?

: 그렇죠. 흔히 똥돼지라고도 하죠? 경남 함양이 주 고장인 흑돼지로 준비해봤는데요, 백돼지에 비해 온몸이 검은 털로 덮여있고 몸집도 작은 녀석이지만 이야깃거리만큼은 아주 풍성하더라고요.

DJ : 함양 흑돼지! 저는 꽤 귀한 음식으로 알고 있거든요? 이 흑돼지 오늘 샅샅이 파헤쳐 보기로 해요. 먼저 우리가 또! 공부하고 가야죠? 함양과 흑돼지의 연결고리 말해 주신다면요?

: , 함양은 험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농사지을 만한 땅이 부족한 곳이죠. 가축이라도 길러야 했지만 이 또한 변변치 않아 돈사와 화장실을 한 공간에서 해결하는 것에 생각이 뻗친 것이죠. 재래식 방식으로 키우는 똥돼지는 1970년대 초반까지 함양을 비롯한 지리산 주변 등에서 볼 수 있었는데요, 1980년대 들어서는 생산성, 위생, 경제성 등의 문제로 모두 일반돼지로 옮겨갔죠. 그러다 2000년대 이후 흑돼지에 다시 눈을 돌렸다 해요. 우량교배를 통해 퇴화하던 흑돼지를 되살렸고, 육질을 단단히 하는 사료를 집중적으로 먹이면서 옛 명성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하네요. 물론 지금도 함양에서는 재래식 똥돼지 흔적을 찾아볼 수 있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아는 이에게 의뢰받아 한 마리씩 키우는 정도에 그친다 하네요.

DJ : 맞아요, 예전에 함양에서 위에는 화장실, 아래는 돈사 형태인 임시 건물을 본 기억이 있는데요, 이제는 그 자리를 흑돼지가 또 채워주고 있다고 하니! 너무 아쉬워하지 않아도 될 듯하네요. 그나저나 책을 보면 흑돼지 사육에 인생을 건 분도 만났다 하더라고요?

: , 10여 년째 흑돼지 농장을 운영하신 한 농민이신데, 이분이 200220마리로 시작해 7000마리까지 개체수를 늘렸다고 해요. 함양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최대규모라 하고요. 흑돼지 농장을 운영하면서 주의해야 할 몇 가지도 알려주셨는데요, 여름에는 기온·습도, 그리고 환기가 특히 중요하다 하네요. 또 흑돼지 육질을 좌우하는 큰 요소로 사료를 뽑아주셨는데 당귀라 불리는 한약재를 섞어 사료로 쓴다고도 해요.

DJ : 역시 좋은 것 먹고 자란 우리 흑돼지들!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 또 있었네요. 여기서! 오해 하나 풀고 갈까요? 흑돼지는 모두 토종돼지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어떤가요. 실제로는.

: 참 모호한데요, 고구려 시대부터 이어진 재래종과 서양에서 들어온 종이 함께 섞였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해요. 자연환경, 키우는 방식에 따라 점차 변화해 왔기도 하고요.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재밌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왜 우리가 흑돼지 고기 보면 까만 털이 송송 박혀 있는 게 있잖아요? 한때는 이게 재래종임을 상징하는 일종의 보증수표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해요아무튼 어느 흑돼지든 품종 개량을 통해 더 건강한 흑돼지를 만드는 노력이 뒷받침된 만큼 토종이든 재래종이든, 외래종이든 모두 다 맛있고 건강하다는 사실! 잊지 않았으면 해요.


좋은 흑돼지를 만들려는 노력이 뒷받침된 만큼 토종이든 재래종이든외래종이든 모두 건강하다는 사실!


DJ : 우리 농민들 노력이 뒷받침됐다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이제 먹는 이야기 좀 해볼까요? 국민 음식이라 불리는 삼겹살부터, 전골까지. 돼지로 할 수 있는 요리 정말 많잖아요. 몇 가지 소개해 주신다면요?

: , 저는 그 함양읍 중앙시장 내 한 식당에서 먹었던 순대와 머리 고기가 기억에 남는데요, 국물을 내는 사골까지 모두 흑돼지가 재료이더라고요. 우선 머리 고기는 연골과 껍질의 조화도 훌륭해서 '싱싱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더라고요. 잘게 간 머리 고기에 양파, 대파, 양배추, 배추, 깨순, 부추, 당근 등을 넣어 만든 피순대는 담백하면서 야채와 고기 선지가 제 맛을 다 낸다 해야 할까요?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느낌이더라고요.

DJ : 물론 저도 순대를 좋아하긴 하지만 고기 군내 때문에 순대 종류를 꺼리는 분도 계시잖아요? 함양 흑돼지, 그런 문제는 없나요?

: , 함양에 또 물이 좋잖아요. 지리산이 내린 지하수에 1시간 정도 담가 피를 뺀다 하니 군내가 정말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도 조금 부담스럽다는 분들이 계신다면 역시! 구워 먹는 것을 추천해 드려요. 살과 고기가 겹겹이 오겹살을 이룬 함양 흑돼지는 이미 맛있는 조건을 타고났는데요, 맑은 육즙과 지방의 조화가 특히 뛰어나 쌈 채소 없이도 몇 점이고 그냥 먹게 되더라고요. 흑돼지 갈비찜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부드럽게 뼈와 살이 분리되면서 입에 착 감기는 그 맛! 다만, 짠맛 강해 술안주보다는 한 끼 밥반찬으로 제격이지 않나 생각되더라고요.


전골로도 많이 먹는 흑돼지. 사진은 불고기 전골!


DJ : 오늘 저녁은! 저도 돼지고기 요리 꼭 먹어야겠네요. 이렇게 맛있는 흑돼지! 당연히 우리 몸에도 좋겠죠?

: 그렇죠! 동의보감에는 돼지고기가 신장과 위장, 간장을 튼튼하게 하며 건조한 것을 촉촉하게 한다고도 나와있는데요, 마른기침을 잡아주는 데도 특히 좋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 몸에 좋은 흑돼지도 먹을 때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요. 돼지고기는 기본적으로 찬 성질이거든요? 잘못 먹으면 소화기병이나 기력손상이 올 수 있다고 하니 꼭꼭! 익혀서! 적당량만 드시길 권장할게요.

DJ : 맞습니다! 맛있다고! 무작정 많이 먹기 없기! 다 같이 꼭 기억해요. 마지막으로 이서 님이 생각하는 함양 흑돼지란?

: 오늘은 뭔가 시처럼. 흑돼지의 오겹, 그것은 땅·돼지·사람의 돌고 도는 인연이 겹겹이 쌓인 것이니라.

DJ : 오늘 소식도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본 글은 라디오 방송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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