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 멋진 경찰

-할어버지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 경찰이었던 우리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들을 잡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어떤 추억이 있나요? : 제사를 지낼 때 할아버지 사진을 봤습니다. 경찰이었던 할아버지는 튼튼해 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과 싸우다가 돌아가셔서, 무덤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찾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를 보면(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 저도 할아버지 같은 경찰이 되고 싶습니다.

 

찬욱은 '경찰'이라는 단어를 열 번쯤 더 적고 나서 숙제를 끝났다. '뿌리를 찾아서'가 쓰인 숙제 제목까지 찬욱의 글이 넘나들고 어떤 글은 알아보기조차 어려웠지만, '경찰'이라는 단어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반듯하게 쓴 찬욱이였다.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들과 싸우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나중에 커서 할아버지 같은 경찰이 되고 싶습니다."

찬욱의 발표가 끝나자 친구들은 손뼉을 쳤다. 찬욱과 친한 남자애들은 '우와'라는 감탄을 섞었고, 덜 친한 남자애들은 '부럽다'고 소곤거렸다.

그날 반 친구 모두가 돌아가며 발표를 했지만 '경찰 할아버지'를 둔 건 찬욱뿐이었다. 선생님도 있었고, 작곡가도 있었고, 힘이 장사인 할아버지도 있었지만 가장 인기가 많은 건 경찰 할아버지였다. 찬욱에게 세뱃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랑거리가 생긴 순간이었다.

친구들은 한동안 찬욱만 만나면 할아버지 이야기를 물었다. 소문은 옆 반에도 퍼졌고 찬욱과 다른 반인 동네 친구에게도 닿았다. 나쁜 사람을 잡으려면 달리기가 빨랐을 거라며 부러워했고, 총도 쏠 줄 알았을 거라며 신기해했다.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는 날이면 찬욱에게 경찰 한 자리를 맡겼다.

찬욱은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워졌다. 찬욱 곁에 있고 없고는 크게 상관없었다. 세뱃돈을 못 받아도 괜찮았다. 멋진 일을 했던 할아버지는 찬욱을 인기 있는 아이로 만들어줬다.

이듬해, 가을 제사상 위에서 할아버지 사진을 다시 봤을 때 찬욱은 할아버지와 자신이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부쩍 자란 찬욱 키만큼이나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었다. 몇 번의 가을이 지나가자 할아버지를 향한 관심은 식었다.

아이들은 이제 자신의 할아버지 직업보다는 세뱃돈 액수에 더 열을 내기 시작했다. 몇몇은 여전히 할아버지를 뽐내고자 애썼지만, 세뱃돈으로 10만 원을 받은 친구보단 인기가 없었다.

다시 가을이 오자,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은 완전히 없어졌다. 찬욱도 똑같았다. 경찰보다는 옆 반 여자애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고, 누군가를 잡는 것보단 도망치는 일도 꽤 멋지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는지보다는 친구와의 격투 게임에서 한 판이라도 더 이기는 것에, 수학 문제를 하나라도 더 맞추는 것에 관심이 갔다.

모두 이 변화를 부정하거나 거부하진 않았다. 아니, 스스로 바뀌었는지도 모르고 변해갔다. 동심을 빼고 보면 더 자세히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경찰이 되고 싶다고 해서 쉽게 될 수도 없고, 막상 되더라도 힘이 들 게 뻔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할아버지 존재 자체를 잊진 않았다. 모두 '내 뿌리가 무엇인지'는 똑똑히 새기고 있었다. 그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거나, 할아버지를 만나거나 떠올리는 일에서 더는 특별함을 얻지 못했을 뿐이었다. 익숙함이 만든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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