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6살 건부에게는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건부보다 2살 많은 누나는 늘 그렇듯 일찍 일어나 방을 닦고 있었고, 건부 엄마는 건부 동생을 등에 업고 미음을 만들었다.
아침부터 어딜 갔다 왔는지 알 수 없는 건부 아빠는 마당에서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불 속에서 더 머물고 싶은 건부였으나, 이 계절이 건부를 가만두지 않았다. 섬진강을 낀 이곳 하동에서는 재첩을 캘 수 있는 게 11월 말까지였다. 이때를 넘기면 내년 4월까지 기다려야 했다.
건부 엄마·아빠가 재첩을 캐는 걸 생업으로 삼진 않았지만, 가난한 농촌 사람들에게 재첩만 한 먹을거리도 없었다. 11월 초면 어른들의 노동은 사실상 끝이 났지만 건부 같은 어린아이들은 11월 말까지도 섬진강을 찾았다. 놀이 삼아, 며칠 품을 들이면 3~4일은 먹고도 남을 재첩을 캘 수 있었다.
누나와 동네 형들, 때론 부모님과 함께 섬진강을 거닐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맨발로 맞는 부드러운 섬진강 모래도 좋았고,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강물의 서늘함도 좋았다. 키가 작은 탓에, 부쩍 추워진 날씨 탓에, 섬진강 깊은 곳까진 들어가지 못했지만 넉넉한 섬진강은 얕은 물에도 재첩을 잉태했다.
건부는 늘 자신의 엄지손톱 보다 작은 재첩은 내년, 내후년을 위해 강으로 돌려보냈다. 강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아빠, 동네 형들의 가르침이었다. 작은 재첩을 멀리 던질 때마다 아까운 마음이 더 큰 건부였으나, 그 아쉬움이 모여 건부를 자라게 하고 있었다. 물론 건부는 알 리가 없었지만.
이날 아침에도 건부는 섬진강 나들이 생각에 들떠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어머니가 차려준 미음을 깨작거리고 나서 누나와 놀러 갈 준비를 부산하게 했다.
건부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건부 아빠는 다시 마당에서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마당을 쓸었다가, 사립문을 손봤다.
건부 눈에 키 큰 남자들이 보인 건 건부가 신발을 고쳐 신고 있었을 때다. 처음에 건부는 아빠 친구인가 싶었다. 하지만, 시커먼 옷을 입고 총까지 든 그들이 사립문 앞에 있던 건부 아빠를 밀치다시피 하며 집 마당으로 들어오면서 건부 생각도 급변했다. 어깨에 멨던 총이 건부 아빠 쪽으로 향하자마자, 다른 남자가 건부 아빠 목덜미를 낚아챘다.
"이놈 맞네."
무리 중 마른 작은 남자가 말하자 남자 두 명은 건부 아빠를 양옆에서 잡고 곧장 양손을 묶었다. 그 사이, 다른 한 남자 건부 아빠 눈을 흰 천으로 가렸다.
"다 알고 왔으니 조용히 하고 가자. 애새끼들까지 줄초상 치르고 싶지 않으면."
마른 남자가 다시 건부 아빠를 향해 쏘아붙였다.
건부 아빠는 "뭔가 잘못된 듯합니다", "누굽니까"라고 절규하듯 외쳤다. 하지만, 그들은 ‘닥치고 따라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건부는 이 좋은 가을 아침,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실감 나지 않았다. 저 사람들을 누구고, 아빠는 왜 저렇게 소리를 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건부 누나에게 물어봤지만 누나는 대답 대신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렸다. 누나를 따라 울먹거리기 시작한 건부는 마루에서 뛰쳐나와 마당 한쪽에 어두커니 서 있는 엄마에게 달려가 안겼다. 아빠를 어디로 데려가느냐고 건부가 몇 번이나 물었지만 건부 엄마는 들은 척도 않았다. 엄마는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서서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건부가 아빠에게 뛰어가려 하자, 엄마는 건부를 더 꽉 끌어안아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건부가 발버둥 치면 칠수록, 건부 얼굴은 엄마 품에 더 안겼다.
양손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건부 아빠는 곧 남자들이 타고 온 트럭 짐칸 한구석에 던져졌다.
'일단 가 보면 안다. 가족 생각해야지'라며 총구로 건부 아빠 머리를 툭툭 건드리는 그들 말과 행동에 건부 아빠는 저항도 반항도 멈췄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좋아.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가자."
트럭을 바라보던 마른 남자가 숫자를 다 세자, 건부 아빠를 태운 트럭이 불쾌한 시동음을 냈다.
자동차가 건부 시야에서 조금 멀어지자 건부를 꼭 안고 있던 건부 엄마 팔이 풀렸다. 그제야 건부도 건부 엄마 얼굴을 봤다. 건부는 엄마가 당연히 울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 얼굴은 왠지 모르게 평온했다.
건부 엄마는 건부 누나를 불렀다. 순간, 매서운 눈빛을 비춘 건부 엄마는 누나에게 힘주어 말했다.
"건부 데리고 차 따라가 봐라. 가서 아버지 얼굴 한 번 더 보고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