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는 머리에 피가 났다. 손발이 저리거나, 멍에 드는 일은 익숙했다. 하지만 머리에서 흐르는 피는 처음이었다. 나도 그놈들도 적잖이 당황했다.
3교시가 자유학습으로 바뀐 게 발단이었다. 선생은 ‘중간고사 공부 좀 하고 있어라’라는 말만 남기고 교실을 비웠다. 10분이 지나고도 선생이 돌아오지 않자 몸이 근질근질한 세 놈이 교실 뒤로 나를 불렀다.
한 놈이 내 매집을 테스트해보자고 했다. 자기 중에 누가 제일 센지 가려보자고 했다.
놈들이 가슴을 치면 나는 점수를 말하는 ‘시스템’이었다. 오락실 앞 기계는 500원짜리라도 먹여야 작동했지만, 나는 공짜였다. 익숙했다.
처음 놈에게 80점을 매겼다. 다음 놈에게는 90점을 줬다. 차례대로라면, 세 번째 놈이 쳐야 하나 첫 번째 놈이 다시 나섰다. 놈은 왜 내 점수가 더 적느냐고 따졌다. 기계가 고장 났다고 구시렁구시렁 되더니 다시 가슴을 쳤다.
20점을 올려 100점을 주자 이번엔 두 번째 놈이 날뛰었다. 자신 주먹이 결코 약할 리 없다던 놈은 예고도 없이 가슴을 때렸다. 110점, 120점, 130점.
세 번째 놈이 자기도 쳐 보자고 했을 때 나는 더 버틸 힘이 없었다. 하지만 기계는 아프면 안 됐다. 세 번째 놈 펀치가 가슴팍을 후려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힘이 풀렸다. 고개가 젖혀졌고 뒤통수가 벽을 때렸다.
‘턱’. 시계를 걸어뒀던 못에 머리를 박힌 건 한순간이었다. 내 머리에 작은 구멍이 생긴지도 몰랐다. ‘야, 피 난다. 그러기에 대충 좀 하자니까’라는 말이 들리고 나서야 아픔이 밀려왔다.
양호실로 가는 계단에서 세 번째 놈은 당부 또 당부를 했다.
“친구들끼리 장난치다가 넘어지면서 다쳤다고 해라.”
미세하게 흔든 내 고개가 불만족스러웠는지, 세 번째 놈은 내 가슴팍을 두세 번 더 치며 확답을 받아냈다.
양호실에서 나는 완벽한 연기자였다. 장난치다가 넘어졌습니다, 누가 자율학습 시간에 장난치래, 죄송합니다, 이만한 게 다행인 줄 알아라, 죄송합니다, 올라가서 얌전하게 있어.
피가 멈추자 거즈로 상처 부위를 감싼 게 다였다. 다음에 또 이러면 진짜 혼날 줄 알라는 선생 말이 등을 때렸다.
교실로 돌아가는 길 세 번째 놈은 연방 잘했다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게 거짓말만큼 쉬운 일은 또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