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을 나는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용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냥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등교하자마자 제일 먼저 했던 일은 피자빵 데우기였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착했던 매점에선, 늘 그렇듯 전자레인지와 마주했다.
1분을 넘기면 안 됐다. 그 이상 돌리면 빵은 금방 눅눅해졌다. 눅눅한 빵은 곧 체벌이었다.
지각도, 게으름을 피워서도 안 됐다. 1교시가 시작되기 전 반드시 배를 채워줘야 했다. 그래야만 다음 쉬는 시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몇 날 며칠을 맞고 깨달은, 노하우였다.
시작은 사춘기에 막 들어섰던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유독 키가 작았던 나는 어느새 외톨이가 됐고, 가장 약한 아이가 돼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도 한몫했다. 이전에는 친구들 이목을 끌었던 내 얼굴색은 어느새 나를 가장 밑바닥으로 보냈다.
돌이켜보면 왜 진작 죽지 않았나 싶다.
“해산동 소리 아파트까지 갑시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10여 분을 기다린 끝에 탄 손님이다. 검은색 정장을 잘 차려입은,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다.
여기서 해산동까지는 12000원. 보람이 있다. 남자가 풍기는 술 냄새에 사뭇 좋은 기분도 든다. 누군가의 삶을 멋대로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이 직업이 지닌 장점 중 하나였다. 운전석 의자를 조절하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차가 부드럽게 튕겨 나갔다.
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조는 듯했다가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입을 뗐다.
“기사님은 고향이 어딘가요?”
“저는 이 지역 사람은 아니고요.”
공통점을 못 찾은 남자는 잠시 실망한 듯하다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결혼은 했으려나. 저는 요즘 우리 아들 때문에 머리가 아픕니다.”
“아, 네.”
“올해 중3 올라가는데 학교에서 말썽을 많이 피워요. 작년에는 엄마랑 나랑 한 번씩 학교 찾아갔고.”
“네.”
빨간불이다. 백미러로 남자를 흘깃 본다. 아들 말썽을 이야기하는 입과 달리 눈가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중3에 오르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문득 물었다.
“니 요새 뭔 일 있나.”
“아니요. 별일 없습니다.”
“알았다.”
이틀 뒤 아버지는 동네 햄버거집을 잡았다.
아버지 초대로 모인 사람은 15명. 피자빵을 자주 먹는,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이 친구들이 학교에서 맨날 니 괴롭히고 못살게 군 친구를 학교에 알려줬다드라. 고마운 친구들이라서 아버지가 오늘 이렇게 불렀다. 마이 무라.”
햄버거 세트 10개, 피자 두 판과 콜라 3병이 테이블 위에 올랐다.
“잘 먹겠습니다.”
한 놈이 외치자 나머지 14명이 합창했다. 잠깐 웃음이 오가고, 음식은 금세 바닥났다. 아버지는 곧 메뉴판을 다시 찾았다.
생일파티 주인공이라도 된 듯 가장 가운데 앉은 나는 내 앞에 놓인 햄버거를 한참 바라봤다.
햄버거 빵 위에 뿌려진 깨소금이 하나 둘, 셋. 넷. 열여섯. 그래, 저놈들도 처음엔 열여섯 명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서클이 만들어졌다. 중3 형들이 교실을 오가며 골랐고 곧 선택을 받은 몇몇이 뭉쳐 다니기 시작했다.
나를 향한 단순한 놀림이 늘어난 것도, 체벌로 바뀐 것도 그 즈음이다.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매점으로 뛰어갔고 점심때면 학교 뒷골목으로 불려갔다. 돌아가며 수없이 놈들 어깨를 주물렀다.
열여섯에게 금이 간 건 중2 겨울 방학이었다.
할아버지에게서 돈을 받아온다던, 오늘은 기필코 술을 사겠다던 키 큰 놈 약속이 세 번째로 깨질 때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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