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 그놈들은 날 많이 건들지 않았다. 한 명씩 이따금 불러 심부름을 시켰을 뿐이다. 담배를 대신 사 달라 했고 집으로 술을 가져오랬다. 온종일 부채질을 시키기도 했지만 체벌은 없었다.
이게 그놈들 습성이었다. 한 놈씩 떨어져 있을 때 그놈들도 그저 그런 중학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 명이 모이면 달라졌다. 한 놈이 먼저 시작하면 나머지 두 놈이 뒤질세라 가슴을 치고 뒤통수를 때렸다. 둘이 있을 때 어깨동무를 했던 팔은 채찍이 됐고 함께 걸었던 발은 허벅지를 치는 몽둥이가 됐다.
“우리 아들 말 들어보니깐, 요즘 애들 진짜 말썽 많이 피우더라고. 뭉쳐 다니면서 친구들 괴롭히는 건 일상하고 여자애들하고도 사고를 많이 치나 봐.”
“네.”
“요즘은 어른들이 뭐라 해도 겁도 안 낸대. 에스엔에스에서 자기들끼리 더 욕하고 난리지. 그런 애들 보면서 괜히 옆에 있는 애들도 따라 하고. 큰일이야 큰일.”
남자는 이제 내 반응은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잣말인 척하고 싶은 말을 내뱉다가 창밖을 잠깐 보고, 다시 이어나가길 반복했다.
아들 자랑으로 시작했던 남자 말은 어느새 요즘 애들을 향한 비난으로 바뀌고 있었다. 물론 그 범주에 내 아들은 없었다. 그저 우리 아들은 몇몇 친구들 때문에 피해를 본 거지 절대 나쁜 애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남자는 과거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요즘 애들은’, ‘요즘에는’을 입에서 떼 놓질 않았다. 어린애들이 발칙하다느니, 문란하다느니, 게네 부모는 뭘 하냐느니 몇 번이고 되물었다.
대답 없는 메아리였지만 남자는 메아리가 체 돌아오기 전 또 다른 메아리를 보냈다. 오갈 줄 모르는 일방통행은 남자가 말하는 요즘 애들보다 한 수 위였다.
여름 방학은 길었다. 몸은 편했다. 놈들이 나를 부르는 날도, 체벌 시간도 학교를 다닐 때에 비하면 반나절 이상 줄어 있었다.
그래도 여름은 길었다. 개학을 앞둔 지 3주쯤 되었을까. 개학 전 한 번 모이자는 놈들 계획에 불려나갔던 그날, 강모래사장에 반쯤 강모래사장에 반쯤 파묻혀 둘러싸인 놈들 장난감이 되고 있었던 그날 오후 8시. 내 뒤통수를 휘갈기던 안경쟁이 한 놈이 물었다.
“얀마, 니는 하루에 딸딸이 몇 번 치냐.”
“나는 안 해 봤는데.”
“이 병신새끼가 어디서 구라야.”
다시 뒤통수를 신나게 때리던 안경쟁이 다른 놈 물음에 잠시 멈췄다.
“근데 갑자기 딸딸이는 왜.”
“아니, 그게 아니고. 이제 딸딸이 말고 한 번 할 때 안 됐나 싶어서.”
안경쟁이 말은 이랬다. 며칠 전 채팅으로 다른 지역 여자애를 알게 됐고, 그 애가 친구들을 데리고 놀러 올 수 있게끔 작업을 다 쳐놨다는 것. 술만 적당히 먹이면 셋이고 다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근데 애들 데리고 술 먹을 때가 없다. 요즘 모텔은 안 뚫리고 애들 집 비는 데도 없고.”
안경쟁이가 뱉은 말에 놈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마디씩 묻고 또 물었다. 예쁘냐, 몇 명이냐, 어디 사는 애들이냐, 진짜 올 수 있다냐, 언제 온다고 하느냐. 한참 동안 광기 어린 눈빛과 말들이 오가고 나서, 놈들 중 가장 덩치가 큰 놈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야, 학교 앞에 월세방 한 3주만 빌리면 안 되나. 방학이라서 사람도 없을낀데.”
“우리한테도 빌려주나?”
“그 점방 옆에 있는 거기. 거기서 옛날에 행님들 방학 때 방 잡아서 술 먹고 놀고 했었어. 거기 빌려줄끼라.”
덩치 큰 놈 말에 놈들은 환호했다. 마친 제 옆에 여자애들이 벌써 있는 양, 몇 놈은 섹스 시늉을 했고 몇 놈은 콘돔은 어디서 사야 하느냐며 고함을 쳤다.
“인마 보고 10만 원 들고 오라하고 나머지 만 원씩 모으고 남는 거로 술이랑 좀 사고.”
안경쟁이가 나를 지목하며 돈을 들먹이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20만 원 들고 오라면 안 되냐는 반말은 ‘그러면 얘 애비한테 들킬 수도 있다’라는 말로 잠재웠다.
내 이야기지만 나는 낄 수 없었다. 손과 발이 모래사장이 파묻힌 이 상태처럼, 나는 언제나 이놈들 앞에서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