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들이 다시 나를 부른 건 이틀 뒤였다. 그사이 거짓말이 익숙했던 나는 문제집을 산다, 친구들끼리 놀러 간다는 핑계를 대며 10만 원을 만들었다. 돈을 건네던 아버지는 그저 아껴 쓰라고만 할 뿐 다른 말은 내뱉지 않았다. 5만 원씩 두 번. 그냥 돈만 줬다.

 

익숙하게 내게서 돈을 받아 간 놈들은 계획대로 학교 점방 옆에 3주짜리 월세방을 얻었다. 6평 남짓한 크기에 이불 하나 배게 하나, 낡은 선풍기 하나. 수신이 잘 되는지 알 리 없는 텔레비전과 위태롭게 그를 받친 탁자, 모 국회의원 이름이 박힌 시계가 그 방 전부였다.

안경쟁이가 안다던 여자애들이 그 방을 찾은 건 다시 이틀 뒤다. 그전까지 방 안에서 놈들 무료함을 달래주는 건 나였는데 이제 대상이 바뀐 순간이었다.

 

여자애들은 모두 4명이었다. 청바지를 입은 애가 둘, 짧은 치마를 입은 애가 하나, 위아래 한 쌍인 트레이닝복을 입은 애가 한 명이었다.

여자애들은 사흘 동안 놀다 간다고 했다. 무리 중에 대장은 안경쟁이와 채팅을 한 청바지 입은 애 중 하나였고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치마를 입은 애였다. 치마 입은 아이는 키는 작았지만 큰 눈과 작고 흰 얼굴이 유독 돋보였다. 허벅지 반을 드러낸 치마도 놈들 시선을 집중시켰다.

여자애들이 오고 나서부터 나는 방에 들어갈 순 없었다. 방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가 부르면 달려가 심부름을 하고 우두커니 서서 망을 보는 게 내 일이었다.

낮에 놈들과 여자애들은 수시로 방을 들락날락했다. 시간이라도 정해 놓은 듯 몇 명이 들어가고 얼마 있다가 다른 무리가 들어가는 식이었다.

저녁이면 마지막까지 남은 놈들과 여자애들이 술판을 벌였고 아침이면 다시 다른 놈들이 와 방으로 들어갔다. 어떤 놈은 새 속옷을 사들고 왔고 선풍기를 들고 오는 놈도 있었다.

셋째 날 여자애들은 거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3~4명씩 무리 지은 놈들만 차례로 교대를 했다.

그때마다 웃음소리, 싫다는 소리, 떼쓰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가장 큰 소리는 앙칼진 여자애 목소리였다. 요즘 애들이 노는 방식이었다.

 

처음 입었던 치마 대신 짧은 반바지와 민소매, 슬리퍼를 신은 키 작고 얼굴이 흰 여자애가 내게 말을 건 건 셋째 날 오후였다.

안에만 있기 갑갑해서 잠깐 나왔다는 여자애는 내게서 담배와 라이터를 찾았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내 말에 순간 표정이 굳어졌던 여자애는 얼마 뒤 표정을 풀고 다시 말을 걸었다.

근데 너는 온종일 밖에 서서 뭐 하냐. 안 들어오냐.”

, 나는.”

혼자서 안 심심하냐?”

그냥 서 있다가 저녁에 집에 가는 거지.”

니가 쟤네 시다바리가?”

, 나는 뭐.”

밖에서 소리 듣고 있으면 안 꼴려?”

안에서 뭐 하는지 나는 모르니까.”

너 해 보기는 해 봤나?”

뭘 해 봐.”

병신. 꺼져.”

 

넷째 날 여자애들이 떠나기 전까지, 얼굴 흰 아이는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마지막 가는 날 다시 입은 짧은 치마와 전보다 수척해진 얼굴이 내 기억 속 그 아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놀잇감을 잊은 몇몇 놈은 나를 다시 방으로 불렀고 평소처럼 체벌을 내렸다. 그날 체벌은 여름 방학처럼 길진 않았다. 한 시간쯤 몸 구석구석을 때리던 놈들은 지쳤는지 하나 둘 쓰러지듯 누워 잠들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놈이 꺼지라라는 말과 함께 눕자 나도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유독 흰 얼굴과 앙칼진 목소리가 중첩돼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밖에서 들은, 여러 갈래가 뒤섞인 앙칼진 목소리 주인이 누구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흰 아이에게 그 목소리를 입혔다. 주인 없는 목소리와 욕지거리, 어렴풋한 얼굴, 좁은 골방의 이미지, 낡은 선풍기 소리.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오른팔, 부기가 빠질 줄 모르는 허벅지. 삐뚤어진 내 첫 자위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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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때 그놈들은 날 많이 건들지 않았다. 한 명씩 이따금 불러 심부름을 시켰을 뿐이다. 담배를 대신 사 달라 했고 집으로 술을 가져오랬다. 온종일 부채질을 시키기도 했지만 체벌은 없었다.

이게 그놈들 습성이었다. 한 놈씩 떨어져 있을 때 그놈들도 그저 그런 중학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 명이 모이면 달라졌다. 한 놈이 먼저 시작하면 나머지 두 놈이 뒤질세라 가슴을 치고 뒤통수를 때렸다. 둘이 있을 때 어깨동무를 했던 팔은 채찍이 됐고 함께 걸었던 발은 허벅지를 치는 몽둥이가 됐다.

 

우리 아들 말 들어보니깐, 요즘 애들 진짜 말썽 많이 피우더라고. 뭉쳐 다니면서 친구들 괴롭히는 건 일상하고 여자애들하고도 사고를 많이 치나 봐.”

.”

요즘은 어른들이 뭐라 해도 겁도 안 낸대. 에스엔에스에서 자기들끼리 더 욕하고 난리지. 그런 애들 보면서 괜히 옆에 있는 애들도 따라 하고. 큰일이야 큰일.”

남자는 이제 내 반응은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잣말인 척하고 싶은 말을 내뱉다가 창밖을 잠깐 보고, 다시 이어나가길 반복했다.

아들 자랑으로 시작했던 남자 말은 어느새 요즘 애들을 향한 비난으로 바뀌고 있었다. 물론 그 범주에 내 아들은 없었다. 그저 우리 아들은 몇몇 친구들 때문에 피해를 본 거지 절대 나쁜 애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남자는 과거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요즘 애들은’, ‘요즘에는을 입에서 떼 놓질 않았다. 어린애들이 발칙하다느니, 문란하다느니, 게네 부모는 뭘 하냐느니 몇 번이고 되물었다.

대답 없는 메아리였지만 남자는 메아리가 체 돌아오기 전 또 다른 메아리를 보냈다. 오갈 줄 모르는 일방통행은 남자가 말하는 요즘 애들보다 한 수 위였다.

 

여름 방학은 길었다. 몸은 편했다. 놈들이 나를 부르는 날도, 체벌 시간도 학교를 다닐 때에 비하면 반나절 이상 줄어 있었다.

그래도 여름은 길었다. 개학을 앞둔 지 3주쯤 되었을까. 개학 전 한 번 모이자는 놈들 계획에 불려나갔던 그날, 강모래사장에 반쯤 강모래사장에 반쯤 파묻혀 둘러싸인 놈들 장난감이 되고 있었던 그날 오후 8. 내 뒤통수를 휘갈기던 안경쟁이 한 놈이 물었다.

얀마, 니는 하루에 딸딸이 몇 번 치냐.”

나는 안 해 봤는데.”

이 병신새끼가 어디서 구라야.”

다시 뒤통수를 신나게 때리던 안경쟁이 다른 놈 물음에 잠시 멈췄다.

근데 갑자기 딸딸이는 왜.”

아니, 그게 아니고. 이제 딸딸이 말고 한 번 할 때 안 됐나 싶어서.”

안경쟁이 말은 이랬다. 며칠 전 채팅으로 다른 지역 여자애를 알게 됐고, 그 애가 친구들을 데리고 놀러 올 수 있게끔 작업을 다 쳐놨다는 것. 술만 적당히 먹이면 셋이고 다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근데 애들 데리고 술 먹을 때가 없다. 요즘 모텔은 안 뚫리고 애들 집 비는 데도 없고.”

안경쟁이가 뱉은 말에 놈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마디씩 묻고 또 물었다. 예쁘냐, 몇 명이냐, 어디 사는 애들이냐, 진짜 올 수 있다냐, 언제 온다고 하느냐. 한참 동안 광기 어린 눈빛과 말들이 오가고 나서, 놈들 중 가장 덩치가 큰 놈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 학교 앞에 월세방 한 3주만 빌리면 안 되나. 방학이라서 사람도 없을낀데.”

우리한테도 빌려주나?”

그 점방 옆에 있는 거기. 거기서 옛날에 행님들 방학 때 방 잡아서 술 먹고 놀고 했었어. 거기 빌려줄끼라.”

덩치 큰 놈 말에 놈들은 환호했다. 마친 제 옆에 여자애들이 벌써 있는 양, 몇 놈은 섹스 시늉을 했고 몇 놈은 콘돔은 어디서 사야 하느냐며 고함을 쳤다.

인마 보고 10만 원 들고 오라하고 나머지 만 원씩 모으고 남는 거로 술이랑 좀 사고.”

안경쟁이가 나를 지목하며 돈을 들먹이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20만 원 들고 오라면 안 되냐는 반말은 그러면 얘 애비한테 들킬 수도 있다라는 말로 잠재웠다.

내 이야기지만 나는 낄 수 없었다. 손과 발이 모래사장이 파묻힌 이 상태처럼, 나는 언제나 이놈들 앞에서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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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머리에 피가 났다. 손발이 저리거나, 멍에 드는 일은 익숙했다. 하지만 머리에서 흐르는 피는 처음이었다. 나도 그놈들도 적잖이 당황했다.

3교시가 자유학습으로 바뀐 게 발단이었다. 선생은 중간고사 공부 좀 하고 있어라라는 말만 남기고 교실을 비웠다. 10분이 지나고도 선생이 돌아오지 않자 몸이 근질근질한 세 놈이 교실 뒤로 나를 불렀다.

한 놈이 내 매집을 테스트해보자고 했다. 자기 중에 누가 제일 센지 가려보자고 했다.

놈들이 가슴을 치면 나는 점수를 말하는 시스템이었다. 오락실 앞 기계는 500원짜리라도 먹여야 작동했지만, 나는 공짜였다. 익숙했다.

처음 놈에게 80점을 매겼다. 다음 놈에게는 90점을 줬다. 차례대로라면, 세 번째 놈이 쳐야 하나 첫 번째 놈이 다시 나섰다. 놈은 왜 내 점수가 더 적느냐고 따졌다. 기계가 고장 났다고 구시렁구시렁 되더니 다시 가슴을 쳤다.

20점을 올려 100점을 주자 이번엔 두 번째 놈이 날뛰었다. 자신 주먹이 결코 약할 리 없다던 놈은 예고도 없이 가슴을 때렸다. 110, 120, 130.

세 번째 놈이 자기도 쳐 보자고 했을 때 나는 더 버틸 힘이 없었다. 하지만 기계는 아프면 안 됐다. 세 번째 놈 펀치가 가슴팍을 후려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힘이 풀렸다. 고개가 젖혀졌고 뒤통수가 벽을 때렸다.

’. 시계를 걸어뒀던 못에 머리를 박힌 건 한순간이었다. 내 머리에 작은 구멍이 생긴지도 몰랐다. ‘, 피 난다. 그러기에 대충 좀 하자니까라는 말이 들리고 나서야 아픔이 밀려왔다.

양호실로 가는 계단에서 세 번째 놈은 당부 또 당부를 했다.

친구들끼리 장난치다가 넘어지면서 다쳤다고 해라.”

미세하게 흔든 내 고개가 불만족스러웠는지, 세 번째 놈은 내 가슴팍을 두세 번 더 치며 확답을 받아냈다.

 

양호실에서 나는 완벽한 연기자였다. 장난치다가 넘어졌습니다, 누가 자율학습 시간에 장난치래, 죄송합니다, 이만한 게 다행인 줄 알아라, 죄송합니다, 올라가서 얌전하게 있어.

피가 멈추자 거즈로 상처 부위를 감싼 게 다였다. 다음에 또 이러면 진짜 혼날 줄 알라는 선생 말이 등을 때렸다.

교실로 돌아가는 길 세 번째 놈은 연방 잘했다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게 거짓말만큼 쉬운 일은 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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