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제사상에서 할아버지를 열다섯 번째 마주하던 그해. 할아버지 사진을 마주한 찬욱은 익숙함에 접어뒀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우리 할아버지가 경찰이랬지'라며 중얼거리던 찬욱은 처음으로 할아버지 사진을 꽤 오래 봤다. 사진 속 할아버지는 30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리가 안 된 눈썹은 꽤 진했다. 눈매 끝은 살짝 올라가 있었고 전체적으로 눈은 가로로 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콧대였다. 빛바랜 흑백사진이었으나 높은 콧대는 뚜렷하게 남았다. 찬욱은 문득,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이 '양키'로 불린다는 걸 떠올리곤 ''하고 혼자 웃었다.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보던 찬욱은 애써 외면하던 생각마저 불러왔다. 그리 오래되진 않았으나, 생각하면 할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며 찬욱을 괴롭혔던 그것은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할아버지 직업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정말 경찰이었을까.'

찬욱은 왜 이 생각을 하게 됐는지 자신도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찬욱이 자라면서 역사를 알게 되고,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그때 시대를 이해하게 된 게 영향을 미친 듯했다. 찬욱이 늘 떠올렸던 낭만적인 그 경찰과 당시 시대가 어울리지 않다고 느낀 것이다.

어쩌면 할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경찰'에만 너무 집착했던 탓일 수도 있었다. 어릴 적에는 그 하나면 충분했는데, 이제는 그것밖에 안 남았다. 몰라서 병이 된 셈이었다.

찬욱은 아빠에게 슬쩍 물어볼까 하다, 이내 접었다. 사실, 이제 그게 뭐 중요할까 싶었다. 어디가 자랑할 일도 없고,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익숙함에 무관심을 더할 차례였다.

 

찬욱은 할아버지를 지운 듯 잊은 듯 살았다. 매년 가을 의무적으로 한 번씩 떠올렸다가도, 계절이 바뀌기 전에 잊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경찰이 되겠다는 생각도 자연스레 바뀌었다. 몸 쓰는 것보단 앉아서 공부하는 게 스스로 더 잘 맞는다는 걸 알았다. 누구를 쫓고 잡을 만큼 튼튼하지도 않았고 예전처럼 달리기를 잘할 자신도 없었다.

찬욱은 당연하듯 변화에 적응했다. 그리고 무심하게 시간을 보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다소 아쉬운 수능 성적을 들고 어부지리로 들어간 대학도 무리 없이 마쳤다.

그 사이 할아버지와 만남은 눈에 띄게 줄었다. 시험 기간이라는 핑계로, 아프다는 핑계로, 용돈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고향 집 내려가기를 미룬 탓이다. 벌초며, 명절 차례상이며 할아버지를 떠올릴 일은 틈틈이 있었으나, 할아버지 얼굴을 마주하진 못했다. 1년에 한 번, 그 가을 제사상을 지나친다면 할아버지를 딱히 볼 일이 없었다.

 

찬욱이 서른세 번째 가을을 맞이한 그해. 어릴 적 그때처럼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던 찬욱은 잊은 듯 살았던 기억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아버지, 우리 할아버지는 진짜 경찰이셨어요?"

옆에서 '내가 맞니, 네가 틀렸나' 재잘되던 누나들이 없었기에 저녁 식사자리에는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누나들을 대신해 소주잔이 자리를 채웠으나, 서먹함을 풀기에는 아직 그 양이 부족했다.

찬욱이 이 이야기를 꺼낸 건 뜻밖에 꽤 감성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2년이 조금 넘는 연애 끝에 결혼까지 바라보게 된 찬욱은 문득 '내 뿌리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찬욱이 아빠가 됐을 때, '뿌리'를 묻는 자식들 앞에서 어버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찰이 아니고 맞고는 이제 상관없었다. 그냥 내가 알던 그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웠던 그 할아버지가 실재하는지 알아야 했다.

찬욱의 물음에 아버지는 예전처럼 말이 없었다. 침묵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가 "너희 할아버지 예전에 경찰이라고 했잖아"라며 거들었으나, 아버지는 대답 대신 소주잔만 만지작거렸다.

"예전에는 그럴 줄 알았는데, 나중에 커서 보니까 이상하더라고요. 그때 그런 경찰이 있었는가 싶기도 하고. 나중에 저도 애 낳으면 증조 할아버지가 이랬다, 할아버지는 이랬다 제대로 가르쳐 줘야지요."

진지하면서도 익살스러운 찬욱 말에 찬욱의 어머니가 웃었다. '결혼하기 전에 별걱정은 다한다'며 찬욱을 놀리던 어머니는 이내 찬욱 아버지를 쏘아붙였다.

"애가 궁금해 하는데 뜸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줘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더구먼."

계획에 없었던 합동작전이 있어서일까, 그사이 취기가 올라서일까. 말없이 있던 찬욱의 아버지가 입을 뗐다.

"느그 아빠가 평생 생각하고 있는 게 있다. 소가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짧은 말을 내뱉고서 소주를 한잔 들이키는 찬욱 아버지 눈에 추억이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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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 멋진 경찰

-할어버지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 경찰이었던 우리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들을 잡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어떤 추억이 있나요? : 제사를 지낼 때 할아버지 사진을 봤습니다. 경찰이었던 할아버지는 튼튼해 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과 싸우다가 돌아가셔서, 무덤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찾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를 보면(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 저도 할아버지 같은 경찰이 되고 싶습니다.

 

찬욱은 '경찰'이라는 단어를 열 번쯤 더 적고 나서 숙제를 끝났다. '뿌리를 찾아서'가 쓰인 숙제 제목까지 찬욱의 글이 넘나들고 어떤 글은 알아보기조차 어려웠지만, '경찰'이라는 단어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반듯하게 쓴 찬욱이였다.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들과 싸우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나중에 커서 할아버지 같은 경찰이 되고 싶습니다."

찬욱의 발표가 끝나자 친구들은 손뼉을 쳤다. 찬욱과 친한 남자애들은 '우와'라는 감탄을 섞었고, 덜 친한 남자애들은 '부럽다'고 소곤거렸다.

그날 반 친구 모두가 돌아가며 발표를 했지만 '경찰 할아버지'를 둔 건 찬욱뿐이었다. 선생님도 있었고, 작곡가도 있었고, 힘이 장사인 할아버지도 있었지만 가장 인기가 많은 건 경찰 할아버지였다. 찬욱에게 세뱃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랑거리가 생긴 순간이었다.

친구들은 한동안 찬욱만 만나면 할아버지 이야기를 물었다. 소문은 옆 반에도 퍼졌고 찬욱과 다른 반인 동네 친구에게도 닿았다. 나쁜 사람을 잡으려면 달리기가 빨랐을 거라며 부러워했고, 총도 쏠 줄 알았을 거라며 신기해했다.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는 날이면 찬욱에게 경찰 한 자리를 맡겼다.

찬욱은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워졌다. 찬욱 곁에 있고 없고는 크게 상관없었다. 세뱃돈을 못 받아도 괜찮았다. 멋진 일을 했던 할아버지는 찬욱을 인기 있는 아이로 만들어줬다.

이듬해, 가을 제사상 위에서 할아버지 사진을 다시 봤을 때 찬욱은 할아버지와 자신이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부쩍 자란 찬욱 키만큼이나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었다. 몇 번의 가을이 지나가자 할아버지를 향한 관심은 식었다.

아이들은 이제 자신의 할아버지 직업보다는 세뱃돈 액수에 더 열을 내기 시작했다. 몇몇은 여전히 할아버지를 뽐내고자 애썼지만, 세뱃돈으로 10만 원을 받은 친구보단 인기가 없었다.

다시 가을이 오자,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은 완전히 없어졌다. 찬욱도 똑같았다. 경찰보다는 옆 반 여자애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고, 누군가를 잡는 것보단 도망치는 일도 꽤 멋지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는지보다는 친구와의 격투 게임에서 한 판이라도 더 이기는 것에, 수학 문제를 하나라도 더 맞추는 것에 관심이 갔다.

모두 이 변화를 부정하거나 거부하진 않았다. 아니, 스스로 바뀌었는지도 모르고 변해갔다. 동심을 빼고 보면 더 자세히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경찰이 되고 싶다고 해서 쉽게 될 수도 없고, 막상 되더라도 힘이 들 게 뻔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할아버지 존재 자체를 잊진 않았다. 모두 '내 뿌리가 무엇인지'는 똑똑히 새기고 있었다. 그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거나, 할아버지를 만나거나 떠올리는 일에서 더는 특별함을 얻지 못했을 뿐이었다. 익숙함이 만든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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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1

"우리할아버지는경찰이셨습니다."

올망졸망한 입으로 쉼 없이 말하는 목소리가 꽤 우렁차다. 솜씨는 조금 떨어져도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지키는, 동네 미용실에서 자른듯한 바가지 머리가 목소리와 묘하게 어울려 웃음을 자아낸다.

초등학교 2학년인 된 찬욱이 숙제를 받은 건 일주일 전이다. '내 뿌리를 찾아서'라는 제목이 붙은 A4 용지에는 할아버지 성함은 뭔지, 연세는 어떻게 되는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하시는 일은 뭔지 등을 알아 오라고 적혀 있었다. 혹시 돌아가셨다면 부모님을 따라 성묘 간 추억 등을 적어도 된다는 친절함도 잊지 않았다. 물론 숙제 종이를 나눠주기 전, 아직 어린아이 다루기가 익숙하지 않은 젊은 담임선생은 '뿌리'라는 단어가 지닌 다양한 뜻을 한참이나 설명해야 했지만.

찬욱과 달리기 실력이 비슷한, 앞자리에 앉은 민기에게 숙제 종이를 넘겨받았을 때 찬욱은 싱숭생숭했다. 찬욱이 할아버지를 본 건 사진이 전부였다. 제사상에 오른, 젊었을 적 사진이었는데 큰고모가 '사진 속 할아버지와 찬욱이 똑 닮았다'며 몇 번이고 말했던 게 생생하다. 큰고모는 부리부리한 눈이 똑같다고 했지만, 찬욱이 보기에는 하나도 닮지 않았었기에 할아버지 얼굴은 금방 잊었다.

 

찬욱은 할아버지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만난 적도 없고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었기에 애초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다.

지난해 명절이 끝나고 학교에 왔을 때 '할아버지에게 세뱃돈 얼마를 받았다'는 친구들 말이 사뭇 부럽기도 했지만, 또 그러려니 했다. 보지도 못했으니 많이 서운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도 찬욱은 이번 숙제를 받고 남몰래 떠올려 봤다. 할아버지가 멋진 일을 했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멋진 일도 없었다. 세뱃돈을 2만 원 더 받는 것은 한두 번 자랑하고 나면 시시해지기 마련이었다. 학기 초 세뱃돈을 많이 받았느니, 적게 받았느니 하며 다투던 친구들도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어울려 놀았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했던 일이 주는 의미는 사뭇 달랐다. 그건 언제든지 자랑할 수 있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 방학이 와도 할아버지가 멋진 일을 했던 사람이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200원짜리 불량식품과 달리, 할아버지 자랑은 돈이 들지도 않았다.

 

"엄마, 우리 할아버지는 뭐하던 사람이었어요?"

숙제를 받은 그 날 오후, 찬욱은 A4 용지를 내밀며 물었다. 찬욱 물음에 '갑자기 그건 왜'라는 표정을 잠시 짓던 엄마는 찬욱이 내민 종이를 훑더니 이내 고개를 몇 차례 끄덕였다.

"이건 엄마보다는 아빠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나중에 아빠 오시면 물어보자. 엄마가 알기에는 할아버지는 멋진 일을 한 사람이셨대."

찬욱은 안도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꼈다. '우리 할아버지는 멋진 일을 했다'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아빠가 들려줄 아빠의 아빠 이야기도 궁금했다. 결혼은 언제 했는지, 아빠는 언제 낳았는지, 어떤 집에서 살았는지, 자랑거리가 수북했다. '초코파이'를 사 오겠다던 지난주 금요일만큼이나 찬욱은 아빠를 기다렸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기다리길 한 시간.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돌아온 아빠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찬욱은 참았던 질문을 쏟아냈다.

"아빠 근데 우리 할아버지는 뭐 하는 분이셨어요?"

'아빠 다녀오셨습니까', '인사부터 해야지'라며 학원을 마치고 돌아와 있던 누나들 말과 찬욱 질문이 뒤섞여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찬욱 엄마가 상황을 정리했다.

"학교에서 숙제를 받았나 봐요. 일단 밥부터 먹고."

 

밥 한술 뜨고 아빠 얼굴 보고. 오매불망 기다리는 찬욱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말이 없었다.

"바보야 할아버지는 선생님이랬어", "아니야, 옛날에 그냥 농사지으셨다고 했어"라며 한참이나 티격태격 되던 찬욱 누나들이 지칠 때쯤, 아빠는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찬욱이 할아버지는 경찰이었어. 오래전에, 그러니까 아빠도 어렸을 적에 나쁜 사람들 잡으러 갔다가 다쳐서 돌아가셨고."

찬욱은 기뻤다. '역시 우리 할아버지는 멋진 일은 했던 사람'이라는 감탄사를 몇 번이고 내뱉었다. 찬욱이 보기에 경찰만큼 훌륭한 사람도 없었다. 책에서, TV에서 보던 경찰은 늘 듬직했고 건강했다. 달리기는 찬욱보다 훨씬 더 빨랐고, 힘은 만화 속 주인공만큼이나 세 보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경찰은 인기가 많았다. 도둑을 잡고,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 경찰은 친구들이 되고 싶은 어른으로 늘 손에 꼽혔다.

'우리 할아버지가 경찰이라니'라는 말을 신나게 내뱉은 찬욱은 곧바로 책상으로 뛰어갔다. 찬욱은 서툴지만 빠른 손놀림으로 숙제 종이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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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끝자락에서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나조차도 모르는 곳으로 소리 없이 도망쳤다. 과거를 지우고 기억을 지웠다.

놈들이 날 찾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놈들은 집요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예전과 같은 세력을 과시할 수 없게 된 놈들에게 내 존재는 금방 잊혔다. 밑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르며 겁냈을 테고 새로운 세력에 빌붙고자 사방을 뛰어다녔을 테다. 그게 놈들 습성이었다. 한두 명만 있을 때는 놈들도 그저 그런 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다시 깨달았다.

 

남자가 흐릿하게 보일 때쯤 나는 P에 있던 기어봉을 D로 옮기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정처 없이 흘러오다 잡은 운전대는 뜻밖에 내게 잘 맞았다. 운전대 쪽으로 바짝 당긴 운전석 의자나, 유독 꼿꼿이 세운 등받이가 동료에게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나는 그게 편했다.

남자가 내린 아파트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 대학가가 있었다. 2분을 달려 도착한 대학가 택시 정류장에 차를 세우고 다시 10분쯤 기다렸을까, 젊은 커플이 탔다.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주세요.”

“네.”

미터기를 켜기 전 운전석을 앞으로 좀 더 당겼다. 등받이를 더 꼿꼿이 세웠다. 의지와 나는 이제 거의 한 몸이 됐다. 이제 나를 때릴 순 없었다. 가슴을 맞을 일도, 누가 뒤통수를 때리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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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를 몇 대 더 맞고 나서야 나는 홀로 남을 수 있었다. 한쪽에 내려놨던 가방을 둘러메고도 한참을 서 있던 나는 여자아이가 갔던 방향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어디라도 숨고 싶었지만 어디에 숨어야 할지 몰랐다. 뭐라도 해야 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사람이 드문 길만 돌고 돌았던 그 오후, 나는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용기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방법을 몰랐을 뿐이었다.

 

“저기 버스정류장 앞에 세워 주면 됩니다.”

옷을 고쳐 입은 남자는 좌석 끝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고 카드를 내밀었다. 남자의 정장만큼 깔끔한 영수증이 나왔다. 11,000원. 남자가 중간에 알려준 길 덕에 빨리는 왔지만 평소보다 1,000원이 빠졌다. 아쉬워도 별수 없었다. 이 불경기에 20분 가까운 거리를 택시로 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남자 말에 제대로 대꾸라도 했다면 1,000원이 빠지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멍청한 생각도 잠시 스쳤다.

남자는 카드를 되돌려 받기 전에 차 문을 열더니 내 손에서 카드를 받자마자 차에서 내렸다. ‘수고하셨다’라는 말이 문 닫는 소리에 묻혔다.

급하게 닫은 차 문틈에 정장 윗옷이 끼일 만도 하건만 몸에 딱 맞는 남자 정장은 그런 불상사를 막았다. 정차해둔 차 옆으로 남자가 지나갔다. 남자가 입은, 조금은 작아 보이는 정장은 사뭇 위태롭기까지 했다. 남자가 말한 요즘 애들 옷과 똑 닮아 있었다.

 

여름 방학만큼이나 긴 겨울이 다가올 때쯤, 나는 철저히 겁쟁이가 되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 대신 곧바로 사회에서 기술을 배우겠다고 했다. 어디든, 뭘 배우든 상관없었다. 그게 놈들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죽을 방법을 찾지 못했으니 도망이라도 쳐야 했다. 공부는 싫다고, 내 성적을 보면 알지 않느냐며 몇 날 며칠 아버지를 설득했다.

완강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니 요즘 별일 없느냐”라고 묻더니 “별일 없다”라는 내 대답을 듣고 나서 허락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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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대로 세 대 먼저 맞고 시작하자. 근데 인간적으로 얼굴은 때리지 말자.”

알았어. 벌써 몇 번이나 얘기해뒀다. 쟤나 중간에 발끈하지 말래.”

까만 놈과 여자 무리 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서 놈들이 바라던 경기가 시작했다. 장소는 후미진 골목, 양측 선수는 맷집이 좋기로 소문난, 키 작은 꼬봉과 구멍 난 양말 소유자였다.

경기 시작. 여자애는 오른 주먹을 쥐더니 내 오른쪽 가슴을 쳤다. 아프지 않다. 내 아픔 정도를 모두 알아차렸는지 야유가 쏟아졌다.

두 대밖에 안 남았다.”

니 그러다가 나중에 터진다. 칠 수 있을 때 세게 쳐라.”

여자애가 다시 한 번 오른쪽 가슴을 쳤다. 전보다 힘이 많이 들어간 주먹에 나도 모르게 ''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쪽에서는 박수 소리, 다른 쪽에서는 그것도 못 참느냐는 욕이 들렸다.

아픔이 분노로 바뀐다. 놈들에게 수없이 맞을 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올라왔다. 여자애에게 울분을 토하고 싶어졌다. 인사 한 번 제대로 나누지 않았던, 나와 같은 처지였던, 이 자리에 투견처럼 끌려왔던 아이인데, 내 분노는 오롯이 여자아이에게 향했다.

살짝 빗나간 마지막 주먹은 어깻죽지를 때렸다. ‘씨발.’ 내가 뱉은 욕에 놈들은 환호했다. 곧이어 이제 세 대 끝났으니 너도 공격하라는 말이 뒤통수를 때렸다.

나는 여자애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간 오른손으로 복부를 쳤다. 여자아이에게서 '' 하는 신음이 나왔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왼발로 여자아이 정강이 쪽을 걷어찼다. 여자 꼬봉은 균형을 잃고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쓰러진 여자아이는 내 쪽으로 팔을 몇 차례 휘저었지만 맞을 리 없었다.

여자아이 손을 발로 밟고 나서도 분노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주저앉은 여자아이를 발로 한 번 더 찰까, 손으로 머리를 때릴까 하는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잘한다, 저 새끼 맷집 키운 보람이 있네, 다음에는 남자 놈하고 한 번 붙여보자, 저 새끼 여자 때린다는 비아냥이 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저놈들이 깐 판에 꼭두각시처럼 놀아나고 있지만 상관없었다. 나를 덮친 분노가 어디서 왔는지 모를 리 없었다. 여자애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이 아이를 죽여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죽도록 패고 싶었다.

한 번 더 걷어차려는 내 몸짓에 여자애는 몸을 잔뜩 웅크리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저 새끼 저러다가 사람 잡겠다.”

우리가 이겼네. 그만.”

놈들 중 한 놈이 나를 제지했다. 여자 무리는 벌레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훑었다. 눈물과 먼지 범벅이 된 여자 꼬봉은 힘겹게 일어나더니 말 한마디 없이 무리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여자아이는 누구도 쳐다보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그냥 걸어만 갔다. 아무도 여자아이를 잡지 않았다.

여자 무리는 재밌었다라는 말만 남기고 우리가 왔던, 여자아이가 향한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놈들은 나를 둘러싸고 쓰레기니, 승리자니, 첫 승을 했다느니 온갖 욕과 칭찬을 동시에 쏟아냈다. 까만 놈은 벌써 다음 상대를 잡겠다며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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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에서 좌회전해서 가는 게 더 빠릅니다.”

.”

좌회전 깜빡이 소리가 체 3번 울리기도 전에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요즘 애들은 선생한테도 바락바락 대든다고 하대. 근데 애들 인권이니 뭐니 때문에 선생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러니까 애들이 점점 더 삐뚤어지지.”

남자는 또 요즘 애들 타령이었다. 자기 자식은 범주에서 빠진 요즘 애들이야기였지만 그 조차도 건너 들은 게 전부였다.

강자와 강자를 강자로 만들어 주는 약자는 언제나 있었다. 머리를 맞는 애와 가슴을 치는 애, 담배를 피우는 애, 여자를 만나는 애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존재했다.

그냥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알고 보면 그 자식도, 그 자식의 아버지도, 아버지의 아버지도 편협된 누군가에게는 요즘 애들이었다.

없던 관심을 억지로 끌어내고 아는 척하고 싶은 욕망으로 뒤덮인 어른이 요즘 애들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그 시절, 강자 편에 섰거나 약자를 약자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탰거나, 그저 방관했거나. 남의 아픔을 지나가는 계절쯤으로 여겼던 대다수 사람에게 요즘 애들은 옛 기억을 감출 피신처에 불과했다.

 

저 앞 신호에서 우회전해서 쭉 직진하면 됩니다.”

미터기 요금이 막 만 원을 넘자 남자가 이전과는 다른 톤으로 말을 이어갔다. 혼자만의 대화가 싫증이 났는지 핸드폰을 살짝 들여다봤다가 이내 덮었다. 정장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또 한참 만지작거리다가 신호가 걸리자 카드를 꺼냈다.

그러다 또 남자는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가을은 가을이네.”

 

놈들 중 몇 명은 일찌감치 하복을 벗고 춘추복을 입었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을 땐 볼품없어 보이던 춘추복도 소수가 입을 땐 달라 보이는 게 학교였다. 놈들은 그 시선을 즐겼고 시스템 안에 있지 않음을 과시했다.

나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아침이면 빵을 데웠고 매 순간 놈들 눈치를 살폈다. 쉬는 시간이면 심부름을 했고 점심때엔 놀잇감이 됐다.

교실 한쪽에서는 고등학교 진학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성적이 좋은 애들은 벌써 다른 도시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중간인 애들은 몇 군데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놈들은 다 함께 갈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다. 그 계획 속에 나도 포함해 있다는 게 섬뜩할 뿐이었다.

놈들에게는 새로운 놀이가 필요했다. 매일 먹는 빵은 물렸고 안마는 예전처럼 시원하지가 않았다. 탈출구를 찾은 건 나처럼 얼굴이 까만 놈이었다.

인마 이거 싸우는 거 한번 보고 싶지 않나.”

남자랑 붙이면 무조건 진다.”

맞은 게 있으니까 맷집은 좀 될걸?”

맞는 건 잘하는 데 칠 줄을 모른다 아이가.”

그래서 어쩌자고.”

걔 있다 아이가. 여자 꼬봉. 걔랑 붙이면 될 거 같은데. 내가 여자애들한테 말할게.”

놈들은 새 놀이에 큰 관심을 보였다. 까만 놈이 앞장서 여자 무리와 얘기를 나눴고 곧 모든 놈들이 만족할 만한 소식을 들고 왔다.

금마 무리도 재밌어하더라. 수요일 마치고 보기로 했다. 치마 말고 체육복 바지 입히고 온다더라. 먼저 세 대 맞고 나서 하기로 했다. 인마 설마 쓰러지겠나.”

잘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며 놈들이 내 등을 토닥거렸다. 어떤 놈은 맷집이 부족하다며 가슴을 쳤고 다른 놈은 특훈이라도 해야 한다며 쫑알거렸다.

상대는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을 했었던 여자아이였다. 친구들과도 곧잘 어울렸던 여자아이는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가장 밑바닥으로 떠밀렸다. 같은 옷을 자주 입고 구멍 난 양말을 한 번 신었다는 게 이유였다.

중학교에 온 이후 빵을 데우러 갔던 매점에서 몇 번 마주쳤지만 인사를 한 적은 없다. 축 처진 어깨, 한숨,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다리, 헝클어진 머리가 나를 보는 듯해 싫었다. 허겁지겁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는 뒷모습도 역겨웠다. 내 뒷모습이 저렇진 않을까 두려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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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이 다시 나를 부른 건 이틀 뒤였다. 그사이 거짓말이 익숙했던 나는 문제집을 산다, 친구들끼리 놀러 간다는 핑계를 대며 10만 원을 만들었다. 돈을 건네던 아버지는 그저 아껴 쓰라고만 할 뿐 다른 말은 내뱉지 않았다. 5만 원씩 두 번. 그냥 돈만 줬다.

 

익숙하게 내게서 돈을 받아 간 놈들은 계획대로 학교 점방 옆에 3주짜리 월세방을 얻었다. 6평 남짓한 크기에 이불 하나 배게 하나, 낡은 선풍기 하나. 수신이 잘 되는지 알 리 없는 텔레비전과 위태롭게 그를 받친 탁자, 모 국회의원 이름이 박힌 시계가 그 방 전부였다.

안경쟁이가 안다던 여자애들이 그 방을 찾은 건 다시 이틀 뒤다. 그전까지 방 안에서 놈들 무료함을 달래주는 건 나였는데 이제 대상이 바뀐 순간이었다.

 

여자애들은 모두 4명이었다. 청바지를 입은 애가 둘, 짧은 치마를 입은 애가 하나, 위아래 한 쌍인 트레이닝복을 입은 애가 한 명이었다.

여자애들은 사흘 동안 놀다 간다고 했다. 무리 중에 대장은 안경쟁이와 채팅을 한 청바지 입은 애 중 하나였고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치마를 입은 애였다. 치마 입은 아이는 키는 작았지만 큰 눈과 작고 흰 얼굴이 유독 돋보였다. 허벅지 반을 드러낸 치마도 놈들 시선을 집중시켰다.

여자애들이 오고 나서부터 나는 방에 들어갈 순 없었다. 방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가 부르면 달려가 심부름을 하고 우두커니 서서 망을 보는 게 내 일이었다.

낮에 놈들과 여자애들은 수시로 방을 들락날락했다. 시간이라도 정해 놓은 듯 몇 명이 들어가고 얼마 있다가 다른 무리가 들어가는 식이었다.

저녁이면 마지막까지 남은 놈들과 여자애들이 술판을 벌였고 아침이면 다시 다른 놈들이 와 방으로 들어갔다. 어떤 놈은 새 속옷을 사들고 왔고 선풍기를 들고 오는 놈도 있었다.

셋째 날 여자애들은 거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3~4명씩 무리 지은 놈들만 차례로 교대를 했다.

그때마다 웃음소리, 싫다는 소리, 떼쓰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가장 큰 소리는 앙칼진 여자애 목소리였다. 요즘 애들이 노는 방식이었다.

 

처음 입었던 치마 대신 짧은 반바지와 민소매, 슬리퍼를 신은 키 작고 얼굴이 흰 여자애가 내게 말을 건 건 셋째 날 오후였다.

안에만 있기 갑갑해서 잠깐 나왔다는 여자애는 내게서 담배와 라이터를 찾았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내 말에 순간 표정이 굳어졌던 여자애는 얼마 뒤 표정을 풀고 다시 말을 걸었다.

근데 너는 온종일 밖에 서서 뭐 하냐. 안 들어오냐.”

, 나는.”

혼자서 안 심심하냐?”

그냥 서 있다가 저녁에 집에 가는 거지.”

니가 쟤네 시다바리가?”

, 나는 뭐.”

밖에서 소리 듣고 있으면 안 꼴려?”

안에서 뭐 하는지 나는 모르니까.”

너 해 보기는 해 봤나?”

뭘 해 봐.”

병신. 꺼져.”

 

넷째 날 여자애들이 떠나기 전까지, 얼굴 흰 아이는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마지막 가는 날 다시 입은 짧은 치마와 전보다 수척해진 얼굴이 내 기억 속 그 아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놀잇감을 잊은 몇몇 놈은 나를 다시 방으로 불렀고 평소처럼 체벌을 내렸다. 그날 체벌은 여름 방학처럼 길진 않았다. 한 시간쯤 몸 구석구석을 때리던 놈들은 지쳤는지 하나 둘 쓰러지듯 누워 잠들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놈이 꺼지라라는 말과 함께 눕자 나도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유독 흰 얼굴과 앙칼진 목소리가 중첩돼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밖에서 들은, 여러 갈래가 뒤섞인 앙칼진 목소리 주인이 누구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흰 아이에게 그 목소리를 입혔다. 주인 없는 목소리와 욕지거리, 어렴풋한 얼굴, 좁은 골방의 이미지, 낡은 선풍기 소리.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오른팔, 부기가 빠질 줄 모르는 허벅지. 삐뚤어진 내 첫 자위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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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때 그놈들은 날 많이 건들지 않았다. 한 명씩 이따금 불러 심부름을 시켰을 뿐이다. 담배를 대신 사 달라 했고 집으로 술을 가져오랬다. 온종일 부채질을 시키기도 했지만 체벌은 없었다.

이게 그놈들 습성이었다. 한 놈씩 떨어져 있을 때 그놈들도 그저 그런 중학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 명이 모이면 달라졌다. 한 놈이 먼저 시작하면 나머지 두 놈이 뒤질세라 가슴을 치고 뒤통수를 때렸다. 둘이 있을 때 어깨동무를 했던 팔은 채찍이 됐고 함께 걸었던 발은 허벅지를 치는 몽둥이가 됐다.

 

우리 아들 말 들어보니깐, 요즘 애들 진짜 말썽 많이 피우더라고. 뭉쳐 다니면서 친구들 괴롭히는 건 일상하고 여자애들하고도 사고를 많이 치나 봐.”

.”

요즘은 어른들이 뭐라 해도 겁도 안 낸대. 에스엔에스에서 자기들끼리 더 욕하고 난리지. 그런 애들 보면서 괜히 옆에 있는 애들도 따라 하고. 큰일이야 큰일.”

남자는 이제 내 반응은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잣말인 척하고 싶은 말을 내뱉다가 창밖을 잠깐 보고, 다시 이어나가길 반복했다.

아들 자랑으로 시작했던 남자 말은 어느새 요즘 애들을 향한 비난으로 바뀌고 있었다. 물론 그 범주에 내 아들은 없었다. 그저 우리 아들은 몇몇 친구들 때문에 피해를 본 거지 절대 나쁜 애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남자는 과거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요즘 애들은’, ‘요즘에는을 입에서 떼 놓질 않았다. 어린애들이 발칙하다느니, 문란하다느니, 게네 부모는 뭘 하냐느니 몇 번이고 되물었다.

대답 없는 메아리였지만 남자는 메아리가 체 돌아오기 전 또 다른 메아리를 보냈다. 오갈 줄 모르는 일방통행은 남자가 말하는 요즘 애들보다 한 수 위였다.

 

여름 방학은 길었다. 몸은 편했다. 놈들이 나를 부르는 날도, 체벌 시간도 학교를 다닐 때에 비하면 반나절 이상 줄어 있었다.

그래도 여름은 길었다. 개학을 앞둔 지 3주쯤 되었을까. 개학 전 한 번 모이자는 놈들 계획에 불려나갔던 그날, 강모래사장에 반쯤 강모래사장에 반쯤 파묻혀 둘러싸인 놈들 장난감이 되고 있었던 그날 오후 8. 내 뒤통수를 휘갈기던 안경쟁이 한 놈이 물었다.

얀마, 니는 하루에 딸딸이 몇 번 치냐.”

나는 안 해 봤는데.”

이 병신새끼가 어디서 구라야.”

다시 뒤통수를 신나게 때리던 안경쟁이 다른 놈 물음에 잠시 멈췄다.

근데 갑자기 딸딸이는 왜.”

아니, 그게 아니고. 이제 딸딸이 말고 한 번 할 때 안 됐나 싶어서.”

안경쟁이 말은 이랬다. 며칠 전 채팅으로 다른 지역 여자애를 알게 됐고, 그 애가 친구들을 데리고 놀러 올 수 있게끔 작업을 다 쳐놨다는 것. 술만 적당히 먹이면 셋이고 다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근데 애들 데리고 술 먹을 때가 없다. 요즘 모텔은 안 뚫리고 애들 집 비는 데도 없고.”

안경쟁이가 뱉은 말에 놈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마디씩 묻고 또 물었다. 예쁘냐, 몇 명이냐, 어디 사는 애들이냐, 진짜 올 수 있다냐, 언제 온다고 하느냐. 한참 동안 광기 어린 눈빛과 말들이 오가고 나서, 놈들 중 가장 덩치가 큰 놈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 학교 앞에 월세방 한 3주만 빌리면 안 되나. 방학이라서 사람도 없을낀데.”

우리한테도 빌려주나?”

그 점방 옆에 있는 거기. 거기서 옛날에 행님들 방학 때 방 잡아서 술 먹고 놀고 했었어. 거기 빌려줄끼라.”

덩치 큰 놈 말에 놈들은 환호했다. 마친 제 옆에 여자애들이 벌써 있는 양, 몇 놈은 섹스 시늉을 했고 몇 놈은 콘돔은 어디서 사야 하느냐며 고함을 쳤다.

인마 보고 10만 원 들고 오라하고 나머지 만 원씩 모으고 남는 거로 술이랑 좀 사고.”

안경쟁이가 나를 지목하며 돈을 들먹이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20만 원 들고 오라면 안 되냐는 반말은 그러면 얘 애비한테 들킬 수도 있다라는 말로 잠재웠다.

내 이야기지만 나는 낄 수 없었다. 손과 발이 모래사장이 파묻힌 이 상태처럼, 나는 언제나 이놈들 앞에서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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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머리에 피가 났다. 손발이 저리거나, 멍에 드는 일은 익숙했다. 하지만 머리에서 흐르는 피는 처음이었다. 나도 그놈들도 적잖이 당황했다.

3교시가 자유학습으로 바뀐 게 발단이었다. 선생은 중간고사 공부 좀 하고 있어라라는 말만 남기고 교실을 비웠다. 10분이 지나고도 선생이 돌아오지 않자 몸이 근질근질한 세 놈이 교실 뒤로 나를 불렀다.

한 놈이 내 매집을 테스트해보자고 했다. 자기 중에 누가 제일 센지 가려보자고 했다.

놈들이 가슴을 치면 나는 점수를 말하는 시스템이었다. 오락실 앞 기계는 500원짜리라도 먹여야 작동했지만, 나는 공짜였다. 익숙했다.

처음 놈에게 80점을 매겼다. 다음 놈에게는 90점을 줬다. 차례대로라면, 세 번째 놈이 쳐야 하나 첫 번째 놈이 다시 나섰다. 놈은 왜 내 점수가 더 적느냐고 따졌다. 기계가 고장 났다고 구시렁구시렁 되더니 다시 가슴을 쳤다.

20점을 올려 100점을 주자 이번엔 두 번째 놈이 날뛰었다. 자신 주먹이 결코 약할 리 없다던 놈은 예고도 없이 가슴을 때렸다. 110, 120, 130.

세 번째 놈이 자기도 쳐 보자고 했을 때 나는 더 버틸 힘이 없었다. 하지만 기계는 아프면 안 됐다. 세 번째 놈 펀치가 가슴팍을 후려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힘이 풀렸다. 고개가 젖혀졌고 뒤통수가 벽을 때렸다.

’. 시계를 걸어뒀던 못에 머리를 박힌 건 한순간이었다. 내 머리에 작은 구멍이 생긴지도 몰랐다. ‘, 피 난다. 그러기에 대충 좀 하자니까라는 말이 들리고 나서야 아픔이 밀려왔다.

양호실로 가는 계단에서 세 번째 놈은 당부 또 당부를 했다.

친구들끼리 장난치다가 넘어지면서 다쳤다고 해라.”

미세하게 흔든 내 고개가 불만족스러웠는지, 세 번째 놈은 내 가슴팍을 두세 번 더 치며 확답을 받아냈다.

 

양호실에서 나는 완벽한 연기자였다. 장난치다가 넘어졌습니다, 누가 자율학습 시간에 장난치래, 죄송합니다, 이만한 게 다행인 줄 알아라, 죄송합니다, 올라가서 얌전하게 있어.

피가 멈추자 거즈로 상처 부위를 감싼 게 다였다. 다음에 또 이러면 진짜 혼날 줄 알라는 선생 말이 등을 때렸다.

교실로 돌아가는 길 세 번째 놈은 연방 잘했다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게 거짓말만큼 쉬운 일은 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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